노자先生의 視線으로
명실(名實):이름과 실질 사이의 관계
공자는 이름과 실제와의 일대일 대응 관계를 확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.
하지만, 노자는 이를 부정했다. 이름, 어떤 대상에 정의를 내리는 행위는 정의가 그 개념을 완전히 가둬버려 구분 짓게 되고 배제하는 폭력적 상황이라고 말한다.
현재 내가 살고있는 시대를 보자. 보편적인 성공한 삶이란 대기업에 들어가, 자가를 갖고 있으며, 아이가 둘 있는 단란한 가정에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한강을 보며 가족끼리의 시간을 보내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. 이를 노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성공 또한 세상이 정의 내린 명찰이지 않을까. 성공은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때 하트를 나타내지 않으면 틀리는 정오(正誤)의 방식이 아니라 사랑을 눈물, 별, 혹은 초콜릿 등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누군가에겐 슬픔을, 누군가에겐 화려함을, 달콤함을 나타낼 수 있듯이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.
나는 모든 것에 정의 내리기를 가치관으로 삼아, 아직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말하지 않겠다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다. 가령 과외학생과 사담을 나눌 때 나왔던 주젠데, 과외학생이 다른 친구들에게 멍청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. (중학생들에게는 가볍게 서로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 든다)
나 : !@%@!###$!@^! 어린것들이 미쳐가지고 어디 우리 애한테 멍청하다고 해?! 델꼬와!
??? :...
나 : 멍청하다는 말을 정의도 내리지 못한 애들이 뭐라고 멍청하다고 말을 해
일상에서 사용하는 멍청하다의 의미를 나는 사용하기 싫어한다. 공부를 못하면 멍청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,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닌 공부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아닐까. 막상 공부를 해보면 가해자보다 더 높은 성과를 보일 수도 있는데.
이처럼 정의 내리지 못한 말들을 사용하는 것을 거북하게 느꼈다. 그 말이 나에게 칭찬이든 아니든. 말을 내뱉는 자가 정의를 정확히 내렸는지 판단하기 전까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. 반면, 노자의 주장이 정의 내리기가 취미인 내 삶에 그렇게 힘들게 살지 말라는 따뜻한 조언으로 다가왔다. 어떤 대상을 정의 내리는 것은 내가 그 대상에게 폭력을 행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 삶이 조금 더 창의적이고 다채롭게 살기 위해 정의를 내리지 않고 다각도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. 정해진 틀은 없다.
누군가에게 사랑은 눈물의 씨앗일 수 있지만, 인간성의 승화 일 수 있음을 기억하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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